신간소개: 로마법의 향연

최병조, 『로마법의 향연』, 「율촌 법이론연구총서」 제1권(서울대학교 법이론연구센터, 2019. 3).

로마법은 서양법과 서양법을 계수한 우리나라 법의 모태이고, 따라서 로마법이 우리나라 법에 대하여 차지하는 의미는 그야말로 본원적이다. 이 책에는 원사료를 통한 본격적인 로마법 연구에 일평생 매진함으로써 우리나라의 로마법학계를 개척·주도하고 세계 학계에 대표해 온 저자의 최근 10년간의 연구성과가 오롯이 집약되어 있다. 『로마법의 향연』이라는 책 제목은, 국내의 척박한 연구 여건 속에서도 저자가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로마법 연구를 하며 ‘법학의 원류’를 찾아가는 여정이 언제나 즐거운 ‘잔치’ 같은 기분이었다는 심정의 토로이다(Ius Romanum Meum Gaudium. ‘나의 즐거움 로마법’).

서울대학교 법이론센터에서 기획한 「율촌 법이론연구총서」 제1권으로 도서출판 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저자의 교수 생활 후반기에 공간한 13편의 주옥같은 로마법 논문을 모은 것으로 필자의 네 번째 논문집에 해당한다. 이 책의 구성은 제1부 로마법 일반, 제2부 로마 인법, 제3부 로마 물권법, 제4부 로마 채권법과 민사소송법, 마지막으로 제5부 로마 형사법으로 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고대 로마 법률가들이 수행한 비교법(제1장)과 지진이라는 자연재해에 로마법이 어떻게 대처하였는가를(제2장) 다룬다. 제2부에서는 로마 인법상 신분변동에 관한 ‘두격감등’(頭格減等, capitis deminutio)을 다룬다(제3장). 제3부에서는 로마법상 중요한 소유권 취득원인으로 점용취득(usucapio)에 관한 두 편의 글(제4장, 제5장)과 그에 관한 사례 연구(제6장), 그리고 로마법상 부합 법리에 관한 글(제7장)이 수록되어 있다. 제4부에서는 사적자치와 규제주의의 관점에서 조합의 임의탈퇴에 관한 우리 민법과 로마법을 비교한 글(제8장)과 로마법상 소송물 가액선서에 관한 글(제9장), 그리고 로마황제가 주재한 고문회의(consilium)에서 실제 다루어진 ‘루틸리아나 원상회복 청구사건’(제10장)을 생생하게 재연한 글이 수록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제5부 로마형사법에서는 로마형법상 사기범죄(제11장)와 문서위조죄(제12장), 그리고 형사피고인의 자살의 문제(제13장)를 다루고 있다. 이 모든 글들은 필자의 탁월한 어문학적·법학적 지식을 토대로 원사료에 기반한 면밀한 분석과 논증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로마법의 모습이 어떠하였는지를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현행법의 해석에 있어서도 많은 통찰력과 시사점을 준다.

오늘날 서구법, 나아가 법학의 원류에 해당하는 로마법은 그 자체만으로도 인류 문명사회의 위대한 유산에 해당한다. 나아가 로마의 법률가들이 후세에 남긴 가장 값지고 모범적인 유산은, 시민이라면 모두가 동등한 자격으로 진정한 담론(disputatio fori)의 자리에서 법리를 통한 인생사의 해결에 몰두하는 과정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인간과 사회와 국가에 대한 냉철한 현실주의에 입각한 통찰을 바탕으로, 그러나 온갖 사리사욕과 사회적 폐해로 점철된 세속적 인생사의 한 중심에서도 인간에 대한 이상과 신뢰를 잊지 않고 이성적 논변을 통하여 인간의 삶을 보다 살기 좋은 것으로 만들려고 한 로마의 법률가들의 노력은 실로 경탄할 만한 것이다. 인간에 대하여 비관도 낙관도 하지 않고, 투쟁하는 인간들을 평화와 정의의 질서를 통하여 법의 인간(homo iuridicus)으로 순치함으로써 살벌하고 적나라한 폭력이 지배하는 혼란스러운 현실 세계를 타파하고 그들이 제도와 법의 틀 안에서 법인격과 권리를 갖춘 주체로서 자율과 자치를 구현하는 세계를 추구한 이들의 노고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법치의 현실태로 실현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로마의 법률가들에게 알게 모르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고대사회가 공유한 노예제 사회라는 부인할 수 없는 한계나 어느 시대 어떤 곳의 인간들과도 다르지 않았기에 법의 이상과는 동떨어진 수많은 부작용과 비리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았던 로마이지만, 그들이 추구하고 실천했던 법의 진면목이 가지는 가치를 부인할 수 없다. 사실 로마 문화의 매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다양한 방면에서 조명되고 재조명되고, 해석되고 재해석되면서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에서 로마법 연구에 대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탁월한 인류 문화유산인 로마법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 수록된 사료색인과 사항색인은 전문 연구자는 물론이고 일반 독자의 경우에도 이 책을 활용하고 참조함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된다.